[특별기고] 韓·日 꼬인 실타래를 푸는 길

입력 2023-04-05 17:41   수정 2023-04-06 00:26

지난 3월 정상회담을 한 지 1주일 만에 한·일 양국은 3년8개월간 서로를 가로막고 있던 첫 번째 장벽을 헐었다. 일본은 3개 품목의 수출규제 조치를 해제하고 우리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철회한 것이다. 곧이어 우리나라는 일본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원상 복구 절차에 돌입했고, 일본도 조만간 복구 절차를 개시할 것으로 기대한다.

일각에서 “WTO의 판단을 받았어야 했다”, “화이트리스트로 복귀 없이 WTO 제소 철회는 잘못이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WTO 제소는 일본의 3개 품목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것이었으므로 제소 원인의 소멸과 동시에 철회한 것은 특별히 양보라고 할 수 없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에 맞서 우리도 일본을 제외했기 때문에 WTO 제소 철회와는 다른 이야기다.

수출규제는 기본적으로 경제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수출규제가 가지고 있는 양면성 때문이다. 수입규제는 국내 산업 보호라도 기대할 수 있지만 수출규제는 자국 기업이 피해를 본다. 특히, 상대국이 국산화하거나 수입처를 다변화할 경우 상대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높은 자국 기업은 손해를 본다.

상호 협력의 필요성과 이익이 큰 국가 간에는 경제관계 경색으로 인한 비용이 더 크다. 한·일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기본 가치를 공유하고 반도체 등 핵심 전략산업 공급망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수출통제로 인한 신뢰관계 훼손은 기업 간 협력 위축 등으로 이어져 서로에게 이롭지 않다. 안보 이익을 공유하고 신뢰하는 국가들이 화이트리스트로써 서로를 존중하는 이유다.

수출규제는 경제계 전반에 걸쳐 자발적 협력을 어렵게 하는 부작용도 크다. 교역 기회 상실 등 직접적 영향도 있지만, 서로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는 신호를 줘 비즈니스 전반의 협력이 위축되기 마련이다. 국내 한 기업의 대표가 “정부 간 불신과 불통이 지속되면 기업 간에도 자연스럽게 거리감이 생겨 작은 비즈니스는 평소대로 하지만 대형 프로젝트는 쉽지 않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의미다.

그동안 우리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로 대응해왔다. 그 결과 소부장 분야에서 우리의 경쟁력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산업, 에너지, 통상 등 경제 전 분야에서 한·일 간 협력은 부진했다. 세계 통상 환경이 자국 우선주의 확산, 신통상규범 태동 등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전략산업과 공급망 분야의 협력은 양국 모두에 더욱 필요하다.

그렇다면 양국 간 꼬일 대로 꼬인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 것인가? 알렉산더 대왕처럼 단칼에 끊어버릴 수도 없고, 양패구상(兩敗俱傷), ‘피로스의 승리’도 피해야 하는 상황이다. 상대방이 먼저 풀어야 나도 푼다는 아집에 빠져 서로에게 미룬다면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빠진다. 승(勝)-승(勝) 게임이 아니라 패(敗)-패(敗)의 악순환,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의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웃 국가와의 관계는 반복 게임이기 때문에 선순환 사이클로 전환하는 것이 모두의 이익에 부합한다. 해법은 신뢰 회복이다.

경색 일로를 걸어온 한·일 경제관계의 개선을 위해 우리가 과감히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제는 먼저 손을 내밀 만큼 우리의 역량이 커졌다. 미·중 전략 경쟁, 공급망 위기, 북핵 위협의 고도화 등 한반도를 둘러싼 복합위기 상황에서 양국 간 신뢰 회복이 절실하다. 신뢰는 내가 먼저 보여줄 때 더 빨리 더 크게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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